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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31 09:35 (월)
종합

안호상 국립극장장

대한민국 공연 예술의 산실 국립극장의 화려한 부활 33년간 문화 예술계의 외길을 걷다 사시사철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즈넉한 예술의 혼을 더욱 불어넣는 이곳. 바로 서울 장충동 남산 기슭에 자리한 국립극장(국립중앙극장)이다. 1950년대에 탄생하여 6 · 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 66년의 역사를 이어 온 국립극장은 국내 공연예술의 요람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의 금자탑이다. 2010년, 공연예술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한국

대한민국 공연 예술의 산실 국립극장의 화려한 부활

33년간 문화 예술계의 외길을 걷다 

사시사철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고즈넉한 예술의 혼을 더욱 불어넣는 이곳.

바로 서울 장충동 남산 기슭에 자리한 국립극장(국립중앙극장)이다. 1950년대에 탄생하여 6 · 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 66년의 역사를 이어 온 국립극장은 국내 공연예술의 요람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의 금자탑이다.

2010년, 공연예술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한국 공연의 과거와 미래의 산실로 자리한 국립극장은 한 때 국가를 대표하는 극장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을 상실한 채 위상이 추락했었다. 국립극장이 옛 명성을 회복하며 대중의 사랑을 다시 얻지까지 변화의 중심에는 국립극장을 진두지휘하는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이 있다. 그를 만나 국립극장의 향후 나아 갈 비전을 들어본다.

국립극장의 위상 추락...문화예술의 산실로서 새롭게 태동하다

“70-80년대 국립극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던 문화의 중심이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LG아트센터가 개관하면서 국립극장이 밀려나게 되었다.

국립극장은 창극. 전통소재를 다룬 현대적인 창작무용, 국악 등에 무게를 두다 보니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멋을 가미한 문화공간들에 비해 도태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국립극장 극장장으로 부임 한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은 국립극장의 추락한 현실의 요인을 냉철히 진단하며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다.

1984년 예술의 전당에 입사한 후 공연기획부장, 공연사업국장, 예술사업국장 등의 주요직을 거치며 23년간 근무해 온 베테랑이자 이후 서울문화재단의 총사령관으로 5년간 리더십을 발휘한 그는 공연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통한다.

38년간 평생 문화예술공연계에 매진해온 그가 국립극장 변화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바로 국립극장이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립극장은 자체 공연작을 제대로 대중에게 선보이지 못했다. 뮤지컬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예술이 강세를 이루다보니 국립극장이 진행하던 공연들은 매력을 잃게 된 것이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서 국립극장도 대관공연으로 프로그램을 채우게 되고 기획공연은 흥행을 예상할 수 없어 포기하는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관객의 무관심은 더 커져가고 문화계의 쓴소리만 거세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자신이 부임하면서 정한 목표와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국립극장 산하 3개 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체를 가지고 레퍼토리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국내 공연장 중 최초로 도입된 ‘레퍼토리 시즌제’는 국립극장의 새로운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레퍼토리 시즌제’란 공연장이 자신의 대표작(레퍼토리)으로 구성된 기간(보통 1년) 동안의 프로그램과 일정을 미리 발표하고 그 스케줄에 따라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전통과 현대의 융·복합을 시도하며 현대 예술가들을 비롯해 해외예술가들도 참여시키는 등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콘텐츠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관이나 뮤지컬 공연으로 국립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국립극장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의 확고한 신념은 누구도 쉽게 성공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용기를 내지 못했던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도화선이자 동력이 되어 3개 산하단체들을 움직였다.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발전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각자의 본질에 더 침작해 들어가면서 깊은 사유를 통해 의미 있는 콘텐츠 창작의 결실을 이뤄냈다.

산고(産苦)의 시간을 통해 이들이 만들어 명품 레퍼토리들은 큰 감동과 기대감을 낳으며 대중을 사로잡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이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실행한 ‘레퍼토리 시즌제’는 이처럼 국립극장의 화려한 부활의 기폭제가 되었다.


시대와 공감할 수 있는 예술로 거듭나다

“시대와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적 감성을 담아야 하는데 과거 국립극장은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작이 접목되지 못해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서양예술에 밀린 것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예술은 전통적이어야한다’는 생각 속에 갇혀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명품 레퍼토리 공연이 나오자 대중들의 작품평가도 좋아지면서 관객이 찾는 공연이 창작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이 된 것이다”

국립극장의 공연작들은 뜨거운 호평 속에 홍콩, 프랑스 등 해외 각국의 초청을 받으며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국제적으로 우리 창극 무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가 서양예술을 좋아하듯 서양인들도 아시아 음악을 좋아한다”며 “한국적인 예술을 잘 만들면 얼마든지 국제적으로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자부했다.


삶의 질적 행복 추구...문화예술계도 호황의 기회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문화예술계에는

호황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전당 설계 초기부터 인연이 있었던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예술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다고 소회했다.“예술의 전당을 건립할 때만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내부적으로도 걱정이 많았다. 중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도망가는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우려는 세월이 흐를수록 기우(杞憂)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을 찾는 관객들은 늘어났고 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문화 향유의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찾아오며 관심도가 커질수록 일하는 행복도 함께 커졌다. 그 덕분에 남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사업들도 과감히 도전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공연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그것을 즐기고 호응하는 관객과의 소통에 기반한다는 것을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술의 방향성 또한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관객들의 호응이 그에게는 가장 큰 지원군이었고 도전을 실행케 하는 추진 동력이다.


대한민국은 아시아 지역의 문화 중심!

“예술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불모지(不毛地)를 개척하는 것도 예술이다”

예술에 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서울에서 성공적인 공연이 지방에 가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지역주민들, 즉 지역소비자에게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공연 행정도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며 지역적 특색을 살린 콘텐츠를 만드는 행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연예술을 공부한 젊은이들이 지역을 특화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우리나라가 보여 준 단기간의 압축성장은 중국, 동남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며 한국공연예술을 활용한 현지와의 접목점도 무한하다고 전망했다.

“동남아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K-POP, 한류, 드라마 등 기본적인 시장 개척을 해놓은 선례가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아시아지역의 문화중심이다”

안 극장은 이러한 기반조성이 다져져 있기 때문에 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자들도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며 비전 제시를 했다. 또한 영어권 문화계에서는 인적자원의 교류가 국가 간에도 활발하다며 젊은 친구들이 동남아 권 등 해외극장 진출을 향한 원대한 꿈을 가지라며 격려했다.

“예술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술을 경영하는 사람도 도전정신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대중도 그런 자세를 원한다”

안 국립극장 극장장은 도전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문화의 위상이 곧 국력의 척도인 시대가 되고 있다. 시대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서, 공연문화의 가치를 견인하고 있는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 그의 선봉 아래 국립극장이 대중과 뜨겁게 호흡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공연예술의 허브로서 전통과 공연예술의 인재들의 꿈을 펼쳐내는 향연장이자 세계인을 사로잡는 문화예술공연의 모체(母體)가 되길 기대한다.


He is...

◦ 2012.1~ 현재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 2007.1~ 2011. 12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 2005. ~ 2007. 1 예술의전당 예술사업국장

◦ 2001. 예술의전당 공연사업국장

◦ 1995.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 1984. 예술의전당 입사

대외 활동

◦ 2007. ~ 2014.12 현재 더 뮤지컬 어워즈 집행위원

◦ 2012.4.4 ~ 현재 ISPA(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국제공연예술협회) 이사

◦ 2013.3 ~ 현재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 2013.4 ~ 현재 World Peace Orchestra 국제 예술 자문위원

◦ 2013.5 ~ 2014.5 청주시C-컬쳐 공동의장

◦ 2013.8 ~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 시민사법위원회 위원

수상 실적

◦ 개인

- 2011년 제43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문화일반 부분) 수상

- 2013년 안전행정부 장관 표창

◦ 기획작품

-2004 동아연극상, 올해의 예술상(토월 정통연극시리즈)

-2002 아사히 예술상(한․일 공동연극 <강건너 저편에>) 등 다수 수상

◦ 서울문화재단 기관수상

-제 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푸르른 날에’(작품상, 연출상)

-2010 대한민국 경영혁신대상 수상/ 공공행정혁신 부문(개인)

-2009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수상 (문화놀이터 사업 관련)

-2010 독일 RED DOT DESIGN AWARD 'BEST OF BEST'수상 (문화놀이터 사업 관련)

-2010 <1동 28번지, 차숙이네>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

-서울시 관광마케팅 대상(문화상품부분_2008 하이서울페스티벌),

-공공행정대상(문화축제부분_2008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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