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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8-30 22:04 (일)
종합

오스트리아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음악대학교 정건영 교수

영혼을 울리는 타악기 연주의 명인 ‘멀티 퍼커셔니스트’ 동양인 최초 빈국립음대 초청교수 27살 나이에 낯선 이국땅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늦깎이 유학생, 외롭고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꿈을 위해 견뎌낸 8년의 세월은 초라한 유학생에서 동양인 최초 빈국립음대 초청교수라는 명예로운 타이틀과 함께 영혼을 울리는 타악기 연주의 명인으로 그를 우뚝 세웠다. 바로‘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丁健榮) 교수 이야기다.

영혼을 울리는 타악기 연주의 명인 ‘멀티 퍼커셔니스트’

동양인 최초 빈국립음대 초청교수

27살 나이에 낯선 이국땅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늦깎이 유학생, 외롭고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꿈을 위해 견뎌낸 8년의 세월은 초라한 유학생에서 동양인 최초 빈국립음대 초청교수라는 명예로운 타이틀과 함께 영혼을 울리는 타악기 연주의 명인으로 그를 우뚝 세웠다. 바로‘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丁健榮) 교수 이야기다.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오스트리아 음악대학교인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Prayner Konservatorium)의 타악기과 정교수로 재직중인 정건영 교수, 그는 2000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클라우디오 아바도, 예후디 메뉴인, 주빈 메타 등 세계 정상의 유럽 클래식 음악가들을 배출한 빈 국립음대에서 발터 파이글(Walter Veigl)을 사사, 타악기 학사, 석사과정과 최고 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상트 푈텐(St.Poelten)교구의 교회 음악, 콘서바토리움(Kirchenmusik Konser- vatorium)에서 합창지휘를,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에서 관현악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했다.

2004년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한 정 교수는 한.오 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 수석 주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빈 국립음대 연주자로 구성된 안톤 베번 오케스트라에서는 리카르토 무티, 주빈메타, 등 세계의 유명 지휘자들과 많은 연주를 하였다. 또한 빈 국립 음대 타악기 앙상블 협연, 비엔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단원 등을 역임하였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빈 콘체르트 하우스, 쉔부른 오페라극장, 빈 뮤직페어라인 골든 홀, 독일 Jahrhunderthalle Frankfurt 등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며 연주 실력을 인정받았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에서의 매 년 정기 연주와 클래식, 재즈 비브라폰, 팝, 오스트리아 상트푈텐 교구 합창단 오라토리오 지휘 등 다방면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독보적인 교수법으로 명성 떨쳐

또한 정 교수는 미국의 100년 전통의 세계적 타악기 전문회사 루딕(Ludwig-Musser)의 팀파니 아티스트로 선정 되었다. 이는 한국인 최초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팀파니 아티스트다. 정 교수는 세계 클래식 대가들의 총망라 네트워킹인 앤드비전(andvision,일본)에서도 유일한 한국인 타악기 수석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인 라이너 제거스와 함께 독보적인 교수법을 발휘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정 교수는 2010년 동양인 최초로 30대에 빈 국립음대 초빙교수로 발탁, 탁월한 강의로 호평을 받았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화여대, 숙명여대, 세종문화회관 등 여러 대학의 음악 수재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정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탁월한 협연으로 환상의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2013년, 세계 최고의 솔로이스트들인 Jeff Queen, Nebojsa Zivkovic 등과 One World Percussion 타악기 앙상블을 만들어 ‘2013년 서울 드럼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2014년 제32회 대한민국국제 음악제에 초청되어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하였다.

국내. 외 굴지의 유명 연주 홀에서 코리안 심포니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전문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존 케이지 작곡 분석, 호흐라이너 연주법, 어린이를 위한 음악 그림 동화책 등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며 학생들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진정성 있는 음악은 자신의 삶과도 일치해야 해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모든 종류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멀티 퍼커셔니스트라고 한다.정 교수가 타악기 분야의 세계적인 명성과 실력을 겸비하기까지 그는 흔들림 없는 음악적 열망으로 늘 자신을 채워왔다. 또한 화려한 테크닉에 치우지기 보다 음악이 갖는 본질을 사유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음악가로서 내면의 인격과 생각이 함께 성숙해져야 한다. 자신의 행동과 삶은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 투영된다. 삶과 괴리된 음악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다”

정 교수는 무대에서의 연주는 청중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음악활동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 그런 인식이 아직 미흡하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소통하기 위한 연습과 사유를 배우기보다 입시준비에 초점이 맞춰지고 경쟁과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시스템에 갖혀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도 스스로의 즐거움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 누려야

그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 아이들이 원한다면 조그만 차에 악기를 싣고 가서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실제로 정 교수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 한적한 나무 아래서 연주를 하며 지나가는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종종 갖기도 했다.

“ 악기연주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관심을 보인다. 그들에게 악기도 만져보게 하고 오스트리아 아이들의 생활상을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도 즐거워한다”

정 교수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아이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는 권유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을 독려하며 재능이 많다고 격려해준다. 무조건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또 독서가 왜 중요한지도 알려주고 독서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정 교수는 수년째 자신의 재능기부를 통해 타악기나 연주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을 위해 연주를 많이 하고 있다. 아니 앞으로도 자신의 재능을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음악의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음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연주, 정건영 교수의 연주는 그 행복한 울림으로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운다. 

 

He is...

2001-2006 빈국립음악대학교 학사 졸업

2006-2008 빈국립음악대학원 석사 졸업

2008-2009 빈국립음악대학원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2008 상트 푈텐 콘서바토리움 합창 지휘과 졸업

2010-2013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관현악 오케스트라 지휘과 졸업

오케스트라

연주경력

2001-2008 안톤베번오케스트라(Anton Webern Orchestra) 팀파니 수석역임

2002 비엔나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Vienna Radio Symphoy Orchestra )

타악기 객원 단원 역임

2009-2013 한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

수상경력

2004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 1위

저서

(동화책) 아빠 모차르트 초콜릿 사주세요 - 아람 출판사

존 케이지 작곡 분석

수필 ‘음악과 살아가기/사랑하기’

현재

2009 – 한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

2009 - 오스트리아 프라이너콘서바토리움 음악대학교 정교수

2012 - 일본 교육 컨설팅 And Vision 소속 아티스트

2013 - One World Percussion Ensemble 멤버

2014 - 미국 Ludwig-Musser 소속 팀파니 아티스트

2013 - 2014 네덜란드 Majestic(마제스틱) 소속 아티스트 역임

Box...........................................................................................

‘멀티 퍼커셔니스트’는 생소하다. 어떤 악기들을 다루고 연주하는 건가?

이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슈반트너의 ‘퍼커션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자주 접하지 못했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었다. 마림바, 봉고, 팀발래스, 크로탈, 큰북, 실로폰, 비브라폰, 팀파니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생소한 악기들이 어떻게 연주되어 어떤 리듬을 만들어내는지 색다르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멀티 퍼커셔니스트가 대중화되어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한데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모든 종류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멀티 퍼커셔니스트라고 보면 되겠다.

2004년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 1위를 차지했다. 어떤 대회인가.

쉽게 말해 1분 안에 가장 빠르게 드럼을 칠 수 있는 연주자를 가려내는 대회다. 나는 1분 동안 1,142타를 연주해 우승했다. 대회에 참가한 계기가 우연이었다. 학교에서 연습 중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차에 태워 무작정 데려간 곳이 이 대회였다. 너무 갑작스럽게 출전한 대회라 간단히 손만 풀고 참가했는데 일주일의 대회 기간 동안 나보다 빠르게 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웃음) 주로 실용음악을 하거나, 테크닉적인 드럼세트 연주자들이 참가했는데 나는 유일한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자였다.

8년 동안의 긴 유학생활에는 고생담도 많을 것 같다.

가장 큰 벽은 언어와 나이였다. 언어가 원활하지 않아 놓치는 학교입시정보도 많았고, 당시 27살이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주 실력이 좋아도 가능성을 보고 뽑는 어린친구들에게 밀렸다. 나를 지지하고 도와줬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시험을 봤던 학교에서마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떨어졌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연습할 장소도 없어 매일 도나우 강가에 앉아 연습용 악기로 ‘뚝딱뚝딱’ 거렸는데 옆에서 시끄럽다고 하면 그곳마저 여의치 않았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내가 여기에 왜 와있는 건가 싶었다.

도나우 강가에 자주 가서 연습하고 시간을 보냈는데 강물이 흐르는걸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약해지더라. 절망스러운 마음에 뛰어들 결심을 하고 여러 가지 계산을 했다. ‘물이 얇은 곳은 돌이 많아 아프니까 최대한 멀리 뛰자’ ‘물이 깊어도 본능적으로 수영을 하게 되면 허사일 텐데’ ‘집에 세탁기가 없으니까 옷만 젖으면 낭패겠다’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결국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웃음)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는 이야기인데 그때는 절박하고 진지했다. 얘기할 친구도 없었고, 강가에 앉아 한 종류의 빵만 지겹게 먹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3개월간 궁지에 몰리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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