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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란 전쟁이 앞당긴 ‘포스트 아메리칸’ 시대: 미 패권의 상실과 다극화의 서막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이란 전쟁이 앞당긴 ‘포스트 아메리칸’ 시대: 미 패권의 상실과 다극화의 서막
이란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장기화되고, 이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해상 봉쇄 조치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에너지 대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란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장기화되고, 이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해상 봉쇄 조치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에너지 대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2026년 봄, 전 세계는 이란 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이란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장기화되고, 이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해상 봉쇄 조치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에너지 대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가져올 진정한 충격은 유가 급등이나 공급망 붕괴 같은 물리적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이번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Pax Americana)’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포스트 아메리칸 (Post-American)’ 시대로 진입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에너지 위기, 안보의 근간을 흔들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전 세계 에너지 흐름의 동맥경화를 일으켰다.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남미의 신흥 경제 강국 칠레,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 잠비아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체급과 지리적 위치가 각기 다른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에너지 부족과 물가 폭등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국가는 현재 에너지 배급제와 같은 비상조치를 검토하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물질적 고통이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보여주었던 ‘글로벌 공공재 제공자’로서의 역할, 즉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던 능력이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급격히 와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석학의 경고: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미국의 유력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근 이란 전쟁이 세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며 두 명의 세계적인 석학, 마티아스 스펙터 (Matias Spektor) 상파울루 FGV 대학 교수와 키쇼어 마부바니 (Kishore Mahbubani) 싱가포르 국립대 석좌교수의 대담을 공개했다.

브라질의 대표적 지식인인 스펙터 교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이라는 권력이 가진 영감 (Inspiration)과 현실 (Reality)이 동시에 후퇴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이란 공격이 그동안 유지해 온 규범 기반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오랜 기간 싱가포르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유엔 대사까지 역임한 마부바니 교수의 분석은 더욱 날카롭다. 그는 "서구권 국가들의 수도(워싱턴, 런던 등)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거대한 지각 변동이 비서구권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부바니 교수는 미국의 이란 전쟁 수행이 동기 측면에서 명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실행 전략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끄러지는 권력, 떠오르는 다극 체제

마부바니와 스펙터는 공통적으로 이번 전쟁이 미국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과거라면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외교적 영향력으로 억제되었을 갈등이 이제는 통제 불능의 전면전으로 번졌고, 그 수습 과정마저 지지부진하다는 점은 미 패권의 쇠퇴를 방증한다.

두 전문가는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1. 미국식 가치의 매력 상실: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 경제를 앞세운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위선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비서구권 국가들 사이에서 그 호소력을 잃고 있다.

 2. 전략적 자율성의 확대: 한국, 칠레 등 미국의 동맹국 혹은 우방국들조차 미국의 전략에 무조건 동참하기보다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독자적인 노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3. 지정학적 공백의 대두: 미국이 중동 분쟁에 발을 묶인 사이, 다른 지역 강국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극화된 세계 질서가 급속도로 형성되고 있다.

결론: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한 불확실한 여정

이란 전쟁은 단순히 중동의 국지적 분쟁이 아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가 마침표를 찍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여전히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유일한 '경찰'도, '경제적 구원자'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이제 미국이라는 거대한 우산 없이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포스트 아메리칸’ 시대에 직면해 있다. 마부바니 교수의 말처럼 "세계가 미국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다가올 불확실한 다극 체제에서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란 전쟁은 그 냉혹한 현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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