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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자유와 생명을 향한 불꽃같은 희생정신이 깃든 호국공원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 둘레길 조성, 시민휴식공간으로 한걸음 더 다가온 현충원

자유와 생명을 향한 불꽃같은 희생정신이 깃든 호국공원 국립서울현충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효와 희생정신을 추앙하는 십자형 탑이 동서남북 4방향을 수호하는 국립서울현충원의 기상이 위풍당당함을 뿜어내고 있다.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늠름한 능선들이 병풍 치듯 감싸 안은 국립서울현충원은 나라의 광복과 국가수호, 생명과 자유를 열망하며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영령들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 되어 잠들어 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오늘을 일궈온 심장이자 주춧돌과도 같은 현충원이 유가족 및 참배객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수려한 자연경관을 선사하는 친화적 공간으로 다가가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와 삶의 휴식을 누리는 시민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호국공원 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은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전사 또는 순직군인과 군무원 및 종군자의 영현을 안장하였으나, 10년 후인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을 비롯하여 국가유공자,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되었다.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수많은 애국지사와 임시정부요인들, 6.25전쟁에서 구국의 의지로 용전분투한 국군장병과 경찰관, 아웅산 묘소에서 순국한 외교사절 17인과 한글학자 주시경선생 등 국가유공자, 국군 귀환포로 1호인 고 조창호 중위, 승마선수로 출전했다 경기중 사망한 고 김형칠 선수, 급류에 떠내려가던 형을 구하고 동생을 구하려다 함께 익사한 고 안윤환 씨, 화재현장에 출동하다 순직한 오정수 소방관 등 일반유공자까지 안장의 대상이 확대되었고 최근에는 외규장각 도서를 145년 만에 반환받는데 공헌한 고 박병선 박사와 경제성장과 철광공업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고 박태준 국무총리도 국가, 사회공헌자 자격으로 안장되었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변모

국가유공자를 모시는 민족의 성역이라는 강한 인식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던 현충원이 서울 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변모하기 까지 지난 4년간 국립서울현충원의 발전을 위해 힘써 온 정진태 원장의 역할이 컸다. 정 원장은 대전국립현충원의 관리과장, 방산지원과장, 예산편성과장에 거쳐 정훈기획관을 역임하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충원이 시민들에게 문화와 체험학습의 장소로 개방될 수 있도록 매진했다. 2009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 원장으로 임명된 정 원장은 “현충원은 훌륭한 선연들이 잠든 곳인 만큼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수양을 하기에도 좋다.”며 일반 사람들도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고민이 있을 때 이곳에 오면 머리도 맑아지고 걱정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동작구가 국립서울현충원~한강수변길~보라매공원으로 이어지는 12.23㎞ 구간의 ‘동작 올레길’을 만들면서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산책로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며 한결 아늑하고 쾌적한 공원으로 변모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서달산 혹은 동작산이라고 불리는 산 중심에 문턱을 둘레길로 조성해 이웃주민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다녀갈 수 있는 공원으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정 원장은 초소도 다 개방하고 일반산책길을 따라 경내길을 가면 4km가 넘는 산책로를 둘러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그동안 시설 및 조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했다. 현충원을 출입하는 데 불편했던 정문을 새로이 건축하고 조명을 설치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정국교, 정난교, 수충교 등 오래된 교량을 개축했다.

국립서울현충원 관람객을 위한 배려는 방문자중심의 운영관리에서도 나타난다.

“장애인들이 오면 김대중 전대통령 묘지를 많이 들린다. 장애인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길을 편편하게 가꿔놨다.” 정 원장의 방문자들의 편의를 고려하는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 원장의 방문객 위주의 운영정책은 현충원 방문객수의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다. “2009년에 방문자 150만 명을 목표로 했는데 201만 명이 다녀갔다. 천안함 사건 이후 220만 명 정도가 다녀갔다. 작년에는 258만 명이 다녀갔다.”며 올해는 300만 명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문제로 교육장소로 활용이 안 되었던 현충관도 공사가 마무리돼 이제 소공연도 할 수 있고 영화상연, 음악회나 연극공연 등의 공연장으로 무료 개방한다고 덧붙였다. “홍대에는 언더밴드도 많은데 강남에는 없다. 현충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이들이 공연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현충원이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열리는 소통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 원장의 바람은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에 대해 친근하게 여기며 시민을 위한 호국 공원으로 느껴달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와서 많이 느끼고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정 원장의 진솔한 답변에는 현충원에 대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최근에는 유가족과 방문객 안내서비스에 불편했던 민원안내실을 신축하고 무인안내기를 설치하는 등 방문객 편익증진을 위해서도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정 원장의 이런 노력 덕분에 현충원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봉사체험과 학습의 장으로 개방

정 원장은 근현대사와 관련해 학계에서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면들이 있는데 현충원에 오면 가이드가 함께 다니며 호국선열들을 비롯 젊은 영정들의 묘역에 대해서도 현충원에 안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어 젊은 학생들이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외에도 최근 일반인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특별히 국립서울현충원은 최고의 봉사체험 장소로 유명하다.

“현충원이 단지 참배하고 묵념만 하다 가는 곳이 아니라 현충원에 와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정 원장은 현충원을 다양한 공간으로 개방하려는 마음에 학생들에게도 유익한 장소가 되도록 고민했고 이런 활동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정 원장은 학생들의 봉사활동에 대해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봉사하면 봉사점수도 주고 인정을 해준다. 하지만 학생들이 단순히 봉사점수를 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봉사를 통해 마음까지 살찌우게 해주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말했다.

 

1사1묘 자매결연 추진

정 원장이 힘쓰고 있는 일 가운데 또 하나는 1사1묘 자매결연이다. 정 원장은 “순국선열들이 젊은 청년시기에 돌아간 경우가 많다보니 아버지나 형제들이 살아있으면 현충원에 자주 들려 묘소를 돌보지만 그 후세대의 경우부터는 자주 찾지 못한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다.“고 1사1묘 자매결연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56개 묘역 자매결연 단체가 21개이다. 정 원장은 계속 확대 중에 있는 자매결연 사업에는 포스코와의 협약을 추진 중에 있으며, 기업과 일반단체와도 자매결연을 활발히 맺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매결연을 맺은 단체는 현충일, 추석 전에 현충원을 다녀가는 등 1년에 최소 2회는 방문하게 된다. 자매결연단체 회원들은 묘소 헌화와 오래된 묘비가 흐려져 있으면 선명하게 가꾸는 작업도 하며 순국영정들에 대한 관심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의미 있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충원에서 즐기는 다양한 행사

현충원은 4계절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 되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정 원장은 봄에 수양벚꽃 축제가 자랑할 만하다고 소개했다. “봄에는 수양벚꽃이 핀다. 조선 효종이 북벌정책을 추진하던 중에 수양벚꽃의 나무껍질로 활 주위를 감아 사용했다.”며 청나라에 당한 고초와 수모를 갚기 위해 북벌계획을 세우던 중 활 재료의 목적으로 수양벚꽃을 많이 심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전했다. 정 원장은 “여의도 벚꽃축제하고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며 현충원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축제로 벚꽃축제의 매력을 꼽았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가을에는 걷기행사도 하고 있다. “매월 이벤트 행사를 한 가지씩은 하고 있다. 현충원은 입장료가 없는 곳이니 자주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특별히 7-8월과 11월 중순이후 등 혹서기와 혹한기를 빼고 토요일 오후 3시에 실시되는 국군 의장 행사는 드넓은 잔디밭과 어우러져 최고의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매일 오후 한시 이십 분에 실시하는 의장대 근무 교대식은 영국 버킹엄 의장병 교대식에 버금가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시민들에게도 점차 사랑을 받고 있다. 정 원장은 “그냥 오시면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라며 현충원이 국가유공자 가족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편안하게 열린 공원임을 강조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가까이 있는 것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시작할 때 정치계인사들이 국립서울현충원부터 찾아올 만큼 현충원은 중요한 자리와 위치에 있다. 정 원장은 건강 면에서 본인도 많이 좋아졌다며 영정들이 계신 곳이고 그분들이 편안히 영민해계시도록 나름 성심껏 돌봐서 그런지 모든 게 편안하다고 말한다.

현충원 안에 관사에서 생활하는 정 원장은 쉬는 날에도 나와서 일을 한다. 현충원의 정규직원들만 70여 명이 된다. 용역업체 경리, 지원부대는 250명 정도로 현충원은 꽤 큰 살림살이의 규모를 지녔다. 모든 면을 통솔하고 관리해야하는 정 원장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

정 원장은 금년 6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올해 한국 나이로는 60이다. 임기를 마치면 향후에는 강의도 하면서 보람되게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며 새로운 출발에 대한 마음을 내비쳤다. 정 원장은 무엇보다 현충원이 시민 호국 공원으로 열려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는 예부터 화장실도 집밖에 두고 묘지를 멀리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서로 가까이 있는데 유교주의 사상 때문인지 묘지를 멀리하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원장은 늘 자신의 자리에서 성심껏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라는 신년메시지를 전했다.

현충원은 이제 서울에서도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을 만큼 친근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제위기 등 나라가 어려울수록 애국심의 고취는 국민을 더욱 단결시키고 화합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현충원의 고고히 서린 순국선열들의 충효정신의 도량 속에 현대인들의 저마다의 삶의 무게들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과 정신을 수양하며 새로운 삶의 충전을 경험하는 진정한 힐링(Healing)을 안겨주는 시민공원으로서 함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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