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의 여파가 새누리당 대권 구도를 집어삼켰다. 당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오세훈(서울 종로) 후보나 김문수(대구 수성갑) 후보의 경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득표율로 낙선했다. 당연히 이들의 대권 도전 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여야 중진 정치인들의 면면이 눈길을 끌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4선에 성공한 나경원ㆍ정진석 당선자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야권에서도 4선 고지에 오른 박영선ㆍ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도 ‘50대 기수론’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정치 신인에게 일격을 당해 날개가 꺾인 중진들도 속출했다.
서울 동작을에서 승리한 나경원 당선자는 4선으로 여당 내 최다선 여성 중진의원으로 발돋움했다. 나 당선자는 20대 국회에서 다양한 변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4선으로 원내대표직은 물론 당권 도전에도 나설 수 있다. 여권의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인 만큼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을 기치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꿰찰 수 있다는 관측도 없잖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후계자로 꼽히는 정진석 당선자도 충남 공주ㆍ부여ㆍ청양에서 4선에 성공하며 충청지역의 맹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 후보의 이번 승리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정치적 동반자로 일컬어지는 박수현 더민주 후보를 꺾고 일궈낸 것이어서 더 값지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 지사가 충청을 기반으로 야권의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2017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안 지사의 대항마로서 정 후보의 정치적 몸값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친유승민계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고지를 찍은 이혜훈 새누리당 당선자도 유승민(대구 동을) 무소속 당선자의 새누리당 복당 문제와 맞물려 향후 정국 태풍의 핵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야권에서는 서울 구로을에서 4선에 성공한 박영선 당선자와 인천 계양을 복귀전에서 4선 타이틀을 거머쥔 송영길 당선자가 가장 주목 받고 있다. 중도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50대 기수론’을 내걸고 야권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 말 주류ㆍ비주류 진영의 첨예한 갈등으로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김부겸 당선자 등 중도 성향 50대 인사들과 손잡고 ‘통합행동’이라는 모임을 꾸린 바 있다. 김 당선자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 수성갑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은 만큼 총선 이후 당대표 경선 등의 과정에서 이들이 만만찮은 영향력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 김포갑의 김두관 더민주 당선자 또한 수도권 입성에 성공하면서 향후 정치행보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옛친이계는 공천학살을 당한데 이어 본선에서도 낙선 위기에 몰리며 명맥이 끊길 처지다. 서울에서 6선에 도전한 이재오(은평을), 4선에 도전한 정두언(서대문을) 후보가 각각 정치 신인인 더민주의 강병원ㆍ김영호 당선자에게 일격을 당했다. 강 당선자는 앞서 당내 경선에서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제치고 공천권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한 바 있다. 김 당선자는 17대 이후 4차례 도전 끝에 정 후보를 물리쳤다. 친박계 핵심인 5선의 황우여 후보도 인천 서을에서 신동근 더민주 당선자에 밀렸다. 충남 논산ㆍ계룡ㆍ금산에서는 ‘안희정 사단’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종민 더민주 후보가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은 이인제 새누리당 후보의 7선 도전을 가로막았다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이 급격히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10개월 남았다. 집권 막바지까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여당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16년 만에 의회 권력이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뀌었다.
여대야소인 19대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개혁법안 등 쟁점 법안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동개혁법 등 4대 개혁법안을 비롯해 국정 운영의 토대가 흔들릴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13일 오후 6시 발표된 방송 3사의 출구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118~147석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청와대는 충격에 휩싸였다. 참모들은 ‘혹시나’ 하며 밤새 개표 과정을 지켜봤지만 끝내 새누리당이 과반에 미달하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는 밤늦게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도 침통한 표정으로 개표 과정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선거 하루 전날 국무회의에서 “20대 국회는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민생법안 처리에 발목을 잡고 있는 야당을 겨냥한 ‘국회 심판론’이었다. 20대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안 등 핵심 법안 처리를 다시 밀어붙이고, 임기 말까지 국정 운영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 핵심 국정과제 이행에 전력하겠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으로 바뀌면서 박 대통령의 이런 정국 구상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대통령 선거가 내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권 내 힘의 중심도 청와대에서 여의도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대선 국면으로 빠르게 접어들면 조기 레임덕(집권 말 권력 누수 현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야당과의 소통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의회 권력이 여소야대로 바뀐 데다 3당 체제로 개편된 만큼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남은 임기 동안 ‘식물 정부’를 면치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또 국면 전환을 위해 일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댓글
0